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희망버스를 탔다. 오고 가며 12시간을 버스에서 보냈다. 1인당 5만원의 회비를 내고 장대비를 맞으며 길 위에서 노숙을 하고 밤을 새우고 최루액을 맞고 쓰린 얼굴을 비비고 다음날엔 땡볕에 아스팔트 위 한줌 그늘에 몸을 의지했다. 24시간 은행 창구 바닥에서 눈을 붙이는 사람들, 병원 대기실 의자에서 수위 아저씨 눈치보면서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, 그마저도 아니면 아스팔트 위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붙였다. 그 짧은 잠마저도, 갑자기 후두둑 쏟아지는 소나기에 깨어야했다. (무심히 지나온 모습이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기가 막힌 모습이기도 하다.) 지난 밤 내린 비들에 젖은 몸, 젖은 옷 때문에 돌아오는 전세 버스 안은 쉰 냄새로 가득했다. 아내도 나도 몸도 마음도 모두 무거웠다.

우리 앞을 지나던 젊은 친구는, 그 자신이 집회 참가자이면서도, 이건 희망 버스가 아니라 절망 버스라고 중얼거렸다. 그곳엔 희망이 없었다. 다만 희망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. 그들마저도 지치고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. 나도 그랬다. 우리를 막아 섰던 차벽 때문만은 아니었다.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, 이 시간이 아니라 그 이전의 삶도 모두 그랬던 것 같다. 답답하고 답이 없고 뭘 한다고 해도 변할것 같지 않았다. 이곳은 다른 곳이 아니었고 이 시간도 다른 시간이 아니었다. 

토요일 밤, 아니 일요일 새벽이었던가... 여튼, 차벽 때문에 더 이상 진행이 안되어 모두들 진이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. 목사 한 분이 나와 자유 발언을 했다. 이 상황을 극복할 대안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게 있다. 그것은, 우리가 모두 그냥 저 전경들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이다. 폭력도 쓰지 말고, 때리면 그냥 맞고 그래서 잡아가면 그냥 잡혀가자. 유치장에서 살라하면 그냥 살자. 뭐가 두려운가. 김진숙이란 한 노동자가 저 타워 크레인에서 죽음을 각오하고 비정규직 철폐하자고 투쟁하는 데 우리가 집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면 그게 정말 행복한건가.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. 이제 더 이상 가는 척만 하지 말고 진짜 가자. 싸우는 척만 하지 말고 진짜 싸우자. 그러면 분명 우린 저 차벽을 무너뜨릴수 있다. 10명이 하면 1년이 걸리고 100명이 하면 한달이 걸리고 1000명이 하면 열흘이 걸리겠지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면 오늘 우린 반드시 저 차벽을 넘어 설수 있다... 고. 

물론, 우린 그렇게 하지 못했다. 하지만, 그 이의 이야기는 내 가슴속에 오래 남았다. 나 자신때문에 이 삶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중 팔할은, 바로 그런 척 하고만 있기 때문일 것이다.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. 일요일 한 낮. 대오를 나와 몇 십대인지도 가름이 되지 않는 전경차들 사이를 걸어서 85호 타워 크레인에 갔다.'해고는 살인이다'는 구호가 써진 플랭카드 위, 크레인 옆에는 몇 조각의 이불들이 널려있었다. 아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김진숙씨가 나와 이불을 확인하는 것도 멀리서 보았다. 김진숙씨도, 지율 스님도 모두 진짜 싸우고 있다. 나는, 다만 멀리서 "여기 우리가 있습니다." 라고 그 이들에게 전하고 싶을 뿐이다. 내가, 혹은 우리가 간혹 이렇게 이 자리에 서 있는 것으로 저 높은 허공에 걸린 콘테이너에서 한낮의 따가운 햇볕을 견디며 있을 그가 외롭지 않을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. 그처럼 허공에 걸린 목숨이 김진숙씨 한 분만도 아닐것이다. 싸움은 언제나, 그리고 모든 곳에서 있을 것이다. 그것이 싸움인줄도 모른 채 우리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. 우리가 버스를 타고 돌아갈 곳이 어디든, 그날의 싸움은 실은, 그곳에서도 계속된다. 적은 실재하는 데 나는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. 그날의 싸움이 없었다면 나는 그것을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. 그것이 그날의 싸움이 나에게 가르켜준 것이다.        

한 달후면 일하던 곳을 그만 둔다. 내 미래의 진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. 앞으로의 내 삶이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했으면 좋겠다.
- ddaimo.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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