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언니의 그림들

일상 2011/12/26 13:47


- 일러스트 백승임 -

홍대 좁다란 골목길 막다른 곳에 자리한 카페, 그라폴리오(http://www.grafolio.net). 집들 사이로 들어선 카페와 그 담 사이로 오래된 시집의 시들이 가슴으로 뚝뚝 떨어지듯 커다란 낙엽이 내리던 늦가을. 승임언니의 전시를 보러 그곳에 갔다.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조카와 남편과 함께 한 번. 오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삼삼오오 모여서 또 한 번. 그곳은 언니와 다른 작가들이 공동으로 전시를 하는 카페겸 작은 화랑인 셈이었다. 언제봐도 정겨운 언니의 그림들이 엽서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과 그 동안 그린 그림책들과 정성이 깃든 도자기 작품들을 보면서, 창작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야기와 에너지와 기분을 만끽했다. 인쇄된 엽서와 책갈피를 사와 주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모두들 정말 좋아했다. 그리고 나는 진품을 얻었다^^. [당신의 양말]과 [당신과 나 사이 한뼘].

사람은 사람뿐 아니라 사물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데, 나는 사물과 관계맺는 방식을 아주 중히 여긴다(늘 새로운 것과 값비싼 사물과 소모적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. 사물과 맺는 방식은 그 사람이 사람과 맺는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^^). 그리고 관계의 방식이 있듯 사람마다 자신이 애착을 지니는 사물이 있다. 내겐 털실이나 양말같은 것이 그러한 것 같다. 어릴 적 신었던 양말들이 지금도 기억이 나니 말이다. 그중 특히 더 기억나는 것이 있다.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 밤 구멍난 분홍색 양말(발가락 쪽은 연한 쑥색)을 문에 걸어두었는데,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무 것도 없어서 슬며시 그것을 떼어 쓰레기통에 버렸었다. 나중에 엄마가 거기에 꼬깃한 삼천원을 넣어주신 것을 알고는 쓰레기통을 바닥까지 뒤져 찾아냈다. 그 양말의 감촉과 포근하니 여린 색상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. 여하튼 어릴 땐 양말들이 참 이쁘기도 하고 오래 신었던 것 같은데, 요즘은 때 안타는 짙은 색으로 사도 몇 개월 신으면 금방 헤지는 것 같다. 언니가 그린 양말 엽서에 모여있는 다양하고 귀여운 양말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내가 지닌 양말 애정 때문이려나...이제부터 좀 더 기억할 수 있는 개성있고 질긴 양말들을 사야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.

그리고 [당신과 나 사이 한뼘]은 두 연인의 겹쳐진 어깨 공간 사이로 푸른 나무들이 싹을 피워올리는 그림이다. 언니는 그림을 주면서 '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정말 손 한뼘만큼 공유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충분하다'고 말해주었다. 누런 갱지 위로 푸른 잎들을 피워낸 그 연인들을 안방에 놓고 마음에 차오르는 그 기쁨이란...나는 좋은 그림을 만났고 그림도 좋은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.

 


그리고 나는 언니의 창조에너지를 받았는지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중이다 ㅎㅎ
 dalit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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